< 스포 있음 >
안개 자욱한 아이슬란드의 산지에서 양을 치며 생활하는 잉그바르와 마리아 부부는 양의 분만을 돕던 중 반인반양(?)인 새끼양을 받아내고는 적잖이 놀란다.
하지만 이들은 그 새끼양에게 아다란 이름을 지어주고 집으로 데려가 친자식처럼 지극정상을 쏟는다.
그 날 이후, 새끼를 잃은 어미양은 매일 같이 창문 밑에서 울어대기 시작하고 그것이 내내 거슬리던 마리아는 어느 날 어미양을 총으로 쏴 죽이고 땅에 뭍어버린다.
그리고 어미양이 죽던 그날 잉그바르의 형제 페트루가 이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반인반양의 아이를 아다라고 부르며 기묘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 이들 부부를 보고 아연실색한다.
페트루는 두 부부가 자는 틈에 총을 들고 아다를 데리고 나가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잉그바르의 말대로 행복한 일상(?)을 같이 보내게 된다.
틈만 나면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페트루를 보다 못한 마리아는 페트루를 다시 타지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페트루를 버스정류소까지 태워다 주고 집으로 온 마리아는 잉그바르와 아다가 보이지 않자 이들을 찾아나선다.
마리아가 없는 동안 트랙터를 고치러 간 잉그바르와 아다는 들판에서 반인반양의 모습을 한 존재와 조우하고잉그바르는 그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총을 맞아 쓰러진다.
곧이어 그 존재는 아다를 데리고 들판 너머로 사라져 버리고 죽은 잉그바르를 발견한 마리아는 구슬프게 절규하며 영화는 끝난다.
처음에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서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렇게 끝난다고?!
당혹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곰곰히 정리를 해보았다.
도데체 그 반인반양의 존재는 왜 잉그바르를 죽였는가?
아마 그 반인반양은 아다의 친부였을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 한 양이 우리 안으로 힘겹게 들어와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때 아마 그 양이 잉태를 한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다가 집안으로 들어간 뒤 창문 밑에서 새끼를 찾아 구슬프게 우는 어미양의 귀에는 3115라고 쓰여진 인식표가 붙어있음을 보여주는데 쓰러지는 양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정작 인식표를 보여주지 않아 확실치 않으나 그렇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어미양이 맞다면 왜 굳이 인식표를 안보여줄까 라는 의문도 남는다.
인식표만 보여줬더라면 첫 장면의 그 양이 어미양이라는 것이 분명해질텐데 말이다.
아무튼 반인반양의 존재는 아다의 친모(양)를 총으로 잔인하게 끔살한 마리아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리아의 남편인 잉그바르를 죽이고 자신의 아이인 아다를 데려간 것으로 보여진다.
즉, 아다의 친모이자 자신의 혈육을 낳은 양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 말고는 뜬금없이 맞이한 잉그바르의 죽음이 해석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몇몇 의아했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마리아가 처음 아다를 집으로 데려와 아기처럼 앉고 있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는 잉그바르의 장면이 있었다.
그때 잉그바르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을까?
그 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아주 평화로운 일상들만 비춰지기 때문에 그 때 잉그바르의 표정에서 나타난 심리가 궁금하다.
단순히 내키지 않지만 그저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척하기 위해 스스로 현실과 타협한 것이었는지?
또 트랙터를 고치기 위해 아다를 데리고 가 주유를 하고 시동이 걸리지 않자 트랙터 밖으로 나와 아다를 데리고 언덕을 올라가기 전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한참을 서있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잉그바르의 표정도 의아했다.
그때 그는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또 엔딩에서 오열을 마친 후 일어난 마리아가 모여준 복잡한 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곱씹을수록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들이 많이 떠오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페트투는 왜 등장한거지?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처음 아다가 등장하고서 한동안 도데체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연출인지 애매하던 구간이 있었는데 페트루가 등장해 아연실색한 눈으로 부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아, 이것은 상징이 아니고 실제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렸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부부만으로는 상황을 객관적이지 볼 수 없으므로 객관적인 시각을 부여하기 위해 페트루는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구나라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물론 순전히 나의 뇌피셜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공포영화라고 단 한번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아다를 보면 묘하게 불편함 같은게 계속 느껴져서 이것을 공포 코드로 잡은 것인가 생각된다.
그리고 특별이 염소에 관련된 오싹함 보다도 안개끼고 음습한 배경과 코스믹 호러 같은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로 장대한 아이슬란드의 경관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코스믹 호러라는 것이 꼭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지구의 압도적 자연 배경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유전과 미드소마를 제작한 A24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X, 그린나이트, 라이트 하우스 등 내가 본 영화들이 꽤 많아서 좀 놀랐다.
최근에 이런 식으로 느린 감성으로 천천히 건조하게 전개되는 영화들이 취향에 맞아서 자주 보는데 <슬로우 번 호러> 라는 장르로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더 위치>나 <미드소마>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거나 지역의 민속과 전통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포크 호러>라는 장르로 분류하기도 하던데 이 쪽 장르도 최근 꽤 취향에 맞아 한두편씩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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