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테넷 (TENET, 2020)

거제리안 2021. 1.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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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있음>

 

 

어렵다는 악명에 도전해보기로 했으나 결과는 떡실신.

그래도 영화를 보고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X나 재밌어!!!" 였다.


개인적으로 DC코믹스 팬이라서 정발된 그래픽 노블을 자주 보는 편인데 그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그랜트 모리슨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 배트맨 시리즈도 있는데 <배트맨 모리슨 런> 이라고 불리는 이 시리즈를 읽은 독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약간의 유행어 같은 말이 바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X나 재밌어!!!" 이다.

영화를 보고서 이런 똑같은 기분을 느껴서 아주 신선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복잡한 플롯의 영화들 중 이 정도까지 넘사벽으로 난해한 영화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난해함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나 결말이 난해하다는 등의 뜻이 아니고 말 그대로 학문적으로 난해하다는 뜻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플롯은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우리가 아는 시간여행의 개념과 많이 다르다.

보통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과거의 특정 년도로 점프를 한 후 그 타임라인에서 다시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통상적이었다.

그런데 테넷에서는 특정 시간으로 점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엔트로피를 역행한다라는 이론적 근거를 들면서 영화상에서는 <인버전> 이란 용어로 사용되는데 쉽게 생각하면 영화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은 모양새로 묘사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특정 과거 시점으로 점프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일주일 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주일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소모하면서 그 시점으로 거슬러 가야한다.

예를 들어 1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버전 상태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 흥미로운 점이 바로 이 영화의 백미인데 이로 인해 생전 처음보는 신선한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고 관객의 골치를 썩게 만드는 난해함을 동시에 던져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어렵기만 한건 아니고 그낭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들은 많다.

이 영화의 빌런은 <사토르>라는 악당인데 이자의 목적은 <세계정복>이라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다소 황당한 야욕을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007 영화의 빌런들과 비슷한 궤를 하고 있다.

단, 반대로 이자의 목적은 세계정복이 아닌 <세계멸망>인데 그 이유는 시한부 인생인 <자신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토르 외에 이 영화의 최종흑막은 따로 있는데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지구에 살고 있는 <미래의 후손>들이란 점이 더욱 흥미롭다.

해수면 상승으로 종말 직전을 맞고 있는 미래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과거의 조상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참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는 주인공의 동료인 <닐>의 존재이다.

닐은 주인공을 돕기 위해 도중에 합류한 CIA 요원 정도로 등장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시간을 역주행 중인 미래의 테넷 요원이다.

시간을 정주행 중인 주인공과 반대로 미래에서 시간을 역주행해 현재의 시점에서 주인공과 만나 미션을 수행 중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상에서 그의 타임라인을 유추해보면 상당히 머리가 복잡해진다.

동시에 그 때문에 상당한 여운을 남겨주는 개감동의 결말도 보여준다.

커뮤니티에서는 닐의 정체에 대해서 캐서린의 아들인 맥스가 아니냐 하는 의견도 분분한데 그저 여담으로만 치부하기엔 꽤나 납득이 가는 연결고리들이 많아서 그 부분도 꽤 흥미롭다.


위에서 언급한 그래트 모리슨 배트맨 작품 중에 <리턴 오브 브루스 웨인> 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파이널 크라이시스>란 이벤트에서 <다크사이드>의 오메가 생션을 맞고 구석기 시대로 날아가게 되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온갖 역경을 겪는 배트맨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다크사이드는 일종의 확인사살용으로 하이퍼어댑터를 보내 배트맨을 추격하게 하는데 배트맨을 과거로 날려보냈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으로 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이퍼어댑터는 미래로 부터 과거로 시간을 역행하면서 배트맨을 추격한다.

이 개념이 테넷에서 닐과 주인공의 관계와 매우 유사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작품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독툭한 개념 덕택에 한 공간에 여러명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시간협공>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접목해서 듣도보도 못한 괴상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정 시간대를 목표로 해서 시간을 정주행하는 주체와 시간을 역주행하는 주체가 동시에 목표물을 공격하는 개념인데 사실 정확히 잘 이해는 안가지만 그냥 입을 벌리고 볼 수 밖에 없게 장면들이 꽤 등장한다.


호불호가 상당히 많이 갈리는 영화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을 무식하다고 비하할려는 의도는 없고 물리학적인 개념들에 평소 관심이 있어서 관련 책들을 자주 뒤적거려 왔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한 영화가 될 것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딱히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는 작중의 대사처럼그냥 봐도 머리는 좀 아프겠지만 어느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보장해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몇몇 장면들을 다시금 이해해 볼려고 떠올리면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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