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사우나 (Sauna, 2008)

거제리안 2022. 7. 2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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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음>

 


15세기 러시아와 스웨덴의 25년 전쟁이 끝나고 양국간에 새로운 국경선을 만들기 위해 모인 양국의 두 위원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에릭과 눈트 형제는 스웨덴 측 위원회로서 러시아 위원회와 만나기 열흘 전 어떤 농부의 집에서 묵게 되는데 어렸을 때 부터 전쟁의 한 복판에서 싸워온 형 에릭은 농부를 의심해 참혹하게 죽이고 눈트가 지하실에 가두어 둔 농부의 딸 마저 꺼내 주지 않고 그 곳을 떠나버린다.

이후 러시아 측 위원회와 만나 국경선 제작 작업을 진행하는데 동생 눈트는 가는 곳곳 딸의 귀신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국경선 한복판에서 거대한 늪지대를 마주한 이들은 늪지대의 한 가운데서 마을을 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마을 한구석에는 그냥 봐도 매우 음습하고 으스스해 보이는 사우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눈트는 이 마을에서 조차 딸의 환영에 시달리고 마을에서는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며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도 나타난다.

자신이 죽인 자들의 망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해 온 에릭은 모든 것에 진져리가 쳐진 탓인지 눈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마을의 유일한 소녀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사라진다.

소녀는 눈트가 모을 사람들 모두를 데리고 사우나로 갔다고 한다.

에릭은 드디어 자신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며 소녀를 마을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은 홀로 사우나로 향한다.

칠흙같은 사우나 속에서 눈트와 조우한 에릭.

눈트는 에릭의 뒤에 서서 에릭의 눈을 두손으로 가리는데 시커먼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에릭의 고통 어린 처절한 절규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을을 빠져나간 소녀가 당도한 곳에서는 남자 시신 한구가 놓여져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그 시신의 얼굴은 없었고 텅빈 부분에서는 검은 액체를 얼굴에서 흘리고 있었다.

그 시신에게 소녀는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15세기 시대극으로서 핀란드 영화로서 에릭과 눈트 형제는 핀란드인이지만 당시에는 핀란드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어서 이들은 스웨덴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오는 듯 하다.

영화가 되게 불친절한 구조로 진행되어 초반부를 몇번이나 돌려보고 나서야 겨우겨우 시간순으로 이해하는데는 무리는 없었으나 사우나가 등장한 이후 부터는 스토리적으로도 모호해져서 나중에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분위기만을 즐기기로 했다.

눈트는 농부의 딸을 범할려는 마음을 잠시나마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그녀를 지하실에 가둬둔 채로 나오게 되는데 형이 그녀를 꺼내주었을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목격되는 그녀의 망령을 보고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할 정도로 형은 전쟁터에서 닳고 닳은 인물이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실제로 그도 자신이 죽인 이들의 망령들에게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물 속에 비친 망령의 모습들을 칼로 휘젓거나 영화 말미에 사우나 앞의 물속에 들어가서 절규하는 장면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되게 불친절하기도 하고 아구가 딱딱 들어 맞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해 보자면 이렇다.

영화에서 농부를 죽이는 장면에서 에릭이 도끼에 맞은 숫자라며 73을 언급한다.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린지 몰랐으나 이는 에릭이 죽인 사람의 숫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딸의 죽음이 확정되었을 즈음 눈트가 74라고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맞는 듯 하고 영화 말미에 눈트의 등에 있는 반점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한 에릭이 75라는 숫자를 인지하고 사우나로 향하는 것만 봐도 에릭은 눈트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늪지대 마을 사람들의 생존자 수가 73이라고 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처음에 딸의 유령과 의심스런 마을은 별개라고 생각했으나 생존자 수가 73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에릭 눈트 형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들 형제의 죄책감 또는 에릭이 죽인 이들의 망령들이 구현화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실제로 이 마을과 사우나는 실존하는 듯 하지만 오래전에 버려져 폐허가 된 마을을 위원회가 발견한 것이고 이들이 목격한 사람들과 현상들은 실제가 아닌 환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에 에릭은 마을에 홀로 남은 소녀를 구해줌으로서 스스로도 구원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소녀 역시 사람이 아닌 환영이었기에 실재로 에릭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에릭 형제 주위를 멤도는 망령들 중 하나에 의해 소멸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녀가 실재로 에릭에게 받아들고 가던 지도가 소녀의 소멸 이후 물에 떠내려가고 또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장면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다소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실재로 소녀에 의해 운반되었던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이미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진 이들에게서 방치되어진채로 어딘가에서 유실되어졌다고 보는게 맞겠다.

이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고 한다면 텅빈 황폐해진 마을에서 뭔가에 씌여 집을 불태우고 스스로의 눈을 파내거나 동료를 찔러 죽이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는 위원회의 모습이 꽤나 오싹하게 느껴진다.

크게 잔인한 장면들은 없었지만 영화의 엔딩에 등장하는 얼굴이 없는 망령과 또 그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소녀의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몸이 뻣뻣해져 있음이 느껴질 정도로 요 근래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임팩트가 큰 장면이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농부의 딸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늪지대의 마을과 사우나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양상이 달려졌다.

25년이라는 오랜 전쟁의 참혹함 한가운데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트라우마와 사연들을 품고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과 사우나는 이 들의 트라우마와 죄책감 등을 극대화 시켜주는 매개체로 등장되었던 것이고 농부의 딸은 단순히 에릭과 눈트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비중으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에릭 눈트 형제 뿐만 아니라 러시아측 위원회 인물들도사우나 앞에서 이상행동을 보이고 자기 눈을 파내 죽거나 느닷없이 커밍아웃을 한 후 동료를 찔러 죽이는 등의 기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농부의 딸은 주인공 형제 사이에 갈등과 죄책감을 주는 장치였고 그것을 극대화시켜 폭발시킨 것은 사우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영화 자체가 남들에게 추천할 정도로 아주 재밌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영화 <알포인트>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평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밌었던 <남극일기> 와도 유사한 지점이 있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장소에서 겪게 되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크리쳐 등에게 공격받는 것이 아닌 음습하고 미스터리한 장소 그 자체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 둘 미쳐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이 유사했다.

그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면 보다는 분위기로 옥죄어오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꽤 만족할 만한 영화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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