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볼 당시에만 해도 나중에 커서 배트맨빠가 되어 배트맨 코믹스를 사모으는 성인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하던 시절이었다.
배트맨의 대표적인 메인 빌런인 투페이스와 리들러를 알리가 만무하던 시절 당시 에이스 벤츄라와 마스크 등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짐캐리와 도망자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형사를 연기했던 토미 리 존스 두 배우가 빌런으로 나온다는 사실 만으로도 상당히 기대감을 가졌던 영화였다.
거기에 발 킬머, 니콜 키드먼 두 배우의 최전성기 시절 미모까지 빛을 발하여 결론적으로 꼬꼬마 시절 매우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다만 그 뒤로 얼추 30년 가량의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내가 배트맨의 팬으로서 곱씹어보니 투페이스라는 캐릭터가 완전히 잘못 연출되었었고 리들러 역시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였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특유의 휘향찬란한 조명들과 총천연색의 색감 등이 어우러지며 기억 속에서 차차 평가가 박해지기 시작해 망한 배트맨 영화의 대명사인 <배트맨과 로빈>과 같은 망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마 최근 워너의 계속된 삽질로 영화 속 DC 세계관이 누더기가 된 것과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배트맨 이미지까지 회화화되며 조롱거리가 된 것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 워너의 대표적 삽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조엘 슈마허 배트맨 두편 역시 은연 중에 미운털이 박혀버린 것 같다.
그러던 중 별 생각없이 쿠팡플레이를 뒤적거리다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고 결론은 "어? 생각보다 꽤 재밌는데?" 라는 것이었다.
물론 앞서 말한 캐릭터들이 원작과 차이가 많다는 사실과 배트맨 특유의 무거운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머리를 비우고 보다 보니 과거 60년대 캠프 스타일이라고 불려지는 배트맨 TV 시리즈가 눈에 들어오면서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이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발 킬머 배트맨의 샤프한 맛도 좋았고 조커 짝퉁처럼 느껴지던 투페이스의 진중함도 간간히 맛볼 수 있었다.
오버스럽긴 하지만 리들러의 연기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투페이스 사이드킥으로 등장한 배우가 드류 베리모어였다는 놀라는 사실을 다시 보다가 깨닫게 되었고 역시 이 영화의 평점을 끌어올리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크리스 오도넬이 연기한 로빈이 생각보다 활약이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요즘에서야 맨날 비밀 신분이 털리고 도대체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것을 아직도 눈치재지 못한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당시에는 배트 케이브가 빌런들에게 털린다는 꽤 충격적인 스토리 라인 역시 다시 봐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총천연색의 유치뽕짝한 색감과 조명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보니 그 속에 음습하고 어두운 고담의 분위기가 잘 녹아있었고 생각보다 아주 디테일하게 공을 들여서 배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디즈니 영화처럼 대놓고 노래가 등장하진 않지만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화려함과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배트맨 포에버>는 전작인 팀버튼의 배트맨과 비교하지 말고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진지한 영화를 보고 싶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을 보면 될 것이고 최근에 개봉했던 더 배트맨을 보면 될 일이다.
요즘 코믹스를 읽다 보면 이젠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스토리처럼 느껴지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의무감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보면 또 색다른 재미가 느껴지는데 이게 바로 여러 명의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미국 만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배트맨 포에버가 명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여러 편의 배트맨 영화 중 기분 전환 삼아 골라 보기에 나쁘지 않으며 볼거리도 많아서 제법 꽉찬 느낌을 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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